기어가더라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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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회고

[Apple Developer Academy in POSTEC] 1주차 회고

Damagucci-juice 2023. 3. 11. 22:52

코드스쿼드 수료 후 ADA에 최종 합격까지 9개월

 22년에 6개월간 코드스쿼드라는 iOS 부트캠프에서 학습을 끝마치고 취업 준비를 호기롭게 나설 때였다. "이렇게만 하면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을 거야"라는 얄팍한 기대감을 가졌었다. 그 기대감은 정확히 2달 만에 무너졌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핑계로 공부를 정~말 여유롭게 했다. 마치 비트코인 대박 나서 사실은 백수로 지내고 싶은데 주위 보는 눈도 있으니 개발자를 하겠다고 하는 한량같이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인은 의욕과다였다. 갓 제대한 군인처럼 의욕이 넘쳐서 목표를 너무 많이 잡으니 결과적으로는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다.

 부트캠프에서 만들었던 코드를 다시 만들어 보았다. 기획서가 있으니 만드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어디서 주워듣기로 부트캠프에서 한 프로젝트는 작업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취업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렇게 되니 의욕도 생기지 않고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니 정말 재미가 없었다. "세상을 바꿀 iOS 앱을 하나 내보자"라는 생각보다는 "어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목적이 수단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수단 자체도 즐거워야 했다. 만들고 성장하고 노력하는 것이 즐거워야 했다. "이만하면 됐지, 시장이 안 좋은 걸 어떡해? 하나님도 불경기는 어쩔 수 없다잖아". 취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경제 상황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돌리고 말았다.

 누가 취업했다더라 하는 소식만 들으면 정말 괴로웠다. 혼자 남는 느낌은 10월 11월쯤 되니 극에 달했다. 하나 둘 취업하고 혼자 남은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경력 기술서, 이력서 작성하는 것이 어려웠다. 나를 소개하고 영업하는 것은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는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전히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아카데미 지원 과정

 그러던 차에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를 알게되었다. 작년 기수들의 작업물들도 보고, 후기도 검색해서 나오는 것은 블로그와 유튜브 거의 모두 본 거 같다. 다시 부트캠프를 도전해야 할지 취업 준비를 이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대로 가면 혼자서 너무 고여버릴 것 같아서 취준은 잠시 미루고 다시 배우고 싶었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적인 것보다는 처음부터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것들도 배우고 싶었다. 혼자서 앱 기획부터 출시까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기회로 느껴졌다. 애플이 무슨 가치관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내는지도 점점 궁금해졌다.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해야할 것은 총 3가지였다.

  1. 250 단어 내의 무엇인가 성취했던 경험(혹은 자기소개)
  2. CV(이력서, 자기 소개서?, 경력 기술서)
  3. 포트폴리오

 2번 3번은 사실 각각 1일 정도면 작성을 했던 것 같은데 1번은 순수하게 3일은 쓴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많은 첨삭을 받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전혀 일면식이 없는 현직 개발자도 검수하며 도와주었다. 왜 1번에 집중을 하였느냐 하면, 1번에서 걸러지면 2번, 3번은 보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코딩 테스트를 보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경험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짜내고, 살을 붙여서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회복 탄력성에 대한 주제였다. 스스로 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경험도 적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살아온 경험 중 하나를 빗대서 적었다. 검수도 많이 받고 해서 3가지 중에 가장 열심히 작성해서 해냈다. 다행히 합격 메일을 1월 중순에 받아볼 수 있었다.

단언컨대 인생 최고의 순간이였다. 왜냐면, 경험이 적다고 느꼈고, 간절하게 시도한 게 되니까 너무 기뻐서 소리 질렀다.

포항이라는 도시와 지내는 건물들

3월 7일에 꽃이 핀다..

정말 덥다. 3월 초엔 추울 줄 알았는데 반팔 반바지로 등교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굴뚝같다.
영일대가 핫 플레이스로 있다. 주차가 아주 어렵고, 이쁜 카페도 많은 동네로 알고 있다. 영일대는 약간 부산의 광안리를 생각하면 비슷하다.
죽도 시장엘 다녀왔는데 구도심의 시장이어서 약간은 한산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물회를 먹으러 다녀왔는데 맛은 기가 막히지만, 호객행위가 심해서 맛집까지 가기가 어렵다. 

영일대 - 수상 한옥?

기숙사는 너무 깔끔하고 도서관도 좋고, 식당 밥도 맛있고, 특히 우리가 있는 C5라는 건물은 지은 지 3년밖에 안돼는 최신식의 건물이다. 창의성이 솟아나는 구조다. 테트라 포트처럼 삼발이 형식의 책상 좌석 배치인데 그 때문에 공간이 넓음에도 100명 정도밖에 수용하지 못하지만, 세션 시간 동안은 정말 모든 곳에서 정보를 얻으면서도 삼삼오오 모여서 팀 회의를 진행하기에 좋다.

러너중 한명이 에어플레이를 연결했는데, 그만 보고있던 유투브가 나와버렸다.

도서관인 박태준 학술 정보관은 배치가 스프링과 같은 원통형 배치이다. 스프링 라인을 따라서 사람들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서 서로를 의식하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시험기간엔 자리 맡기가 어렵다는데 아직은 여유로운 편이다. 곧 C5도 상시 개방이 될 거 같아서 학습하는 공간에 대한 부족함은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원통형 좌석 구조인 박태준 학술 정보관

Ps. 기숙사는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달라서 운이 좀 따라야 할거 같다. 5월중에 모두 신식기숙사로 이전 계획이 있어서 친구들도 참고 있는 듯하다. 나는 바로 신식 기숙사에 걸렸다. 와우 초-러키 가이!!!

오른쪽 건물이 C5

첫 5일간의 활동에 대한 짧은 소감

 Prelude(서곡)라고 해서 나를 알아가고, 친구들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있다. 부수적으로 아카데미에서 학습하는 환경을 세팅하고, 기숙사 서류 제출, 미모지 카드 제작(명찰카드) 등 이런저런 것을 하는데 너무 신난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었는데 이런 환경에 놓이니까 꿈을 꾸는 것처럼 좀 벙벙하기도 하다. 3일 차에는 멘토분들의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정말 엄청난 분들이었다.

 한 주 동안은 적응하고 친해지고, 등등 하는 기간이었다. 첫 주부터 엄청나게 달릴 줄로 기대했던 분들은 약간은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너무 힘들어서 4일 차 아침에 샤워하는데 코피가 났다. 건강한 몸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이렇게 지혈이 안되기는 처음이었다. 오전반에 100명의 친구들을 사귀고, 진행되는 세션이 4시간인데 정말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그러고 나서 점심 같이 먹고 커피 마시고, 기숙사 집에 들어오면 3시~4시인데 낮잠을 자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5일차에는 애플 본사 팀원들과 인터뷰 세션이 있었는데, 전부 영어여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외 활동은 전부 한국어) 대략 우리를 환영한다는 말과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시간이었다. "AI가 개발자를 위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ChatGPT는 답변은 잘하지만 질문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곧 질문도 할 것 같다.)

 멘토팀과 운영팀이 따로 존재해도 200여 명의 러너(학습자)들을 케어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들의 노고는 정말 박수받을만하다.  오전 100명, 오후 100명, 총 200명을 케어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집중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멘토팀과 옵스팀은 어떻게 모았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면서도 첫 5일간의 세션 덕분에 거의 모두의 마음의 문을 열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고 있다.

시작 6일 차인 오늘 디자인 스터디 1~2개, 디자인과 도메인 파트를 위한 iOS 과외처럼 공부 동아리뿐만 아니라 테니스, 배드민턴, 축구, 방탈출, 서핑, 맛집 탐방, 카페 탐방, 포스텍에 재학 중인 프랑스 교환학생과 교류하는 홈파티, 클라이밍, 헬스 등등 엄청난 속도로 동아리들이 만들어지고 조직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ADA 팀이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

 나도 누군가 간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아서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한 없이 평범해져 버렸다. 다양한 외국 생활을 하신 분들부터, 이라크 파병, 네이버 본사 창문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축설계사, 배낭 메고 멕시코, 콜롬비아를 여행한 여성 여행가, 대안 학교 선생님,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본가에 두고 오신 아빠, 23살의 스타트업 창업가, 카페 사장님, 헤커톤 기획자, 중국 공산당에 입당 제안을 받은 사람, 드러머, 베이시스트, 기타리스트, 패션 디자이너, 영상 기획자, 이미 앱 여러 개를 출시한 개발자, 우리나라 스케이트 보더 1세대, 등등 평범한 사람이 없다.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끼시는 분들도 여기 들어왔다는 사실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다양성이 애플의 톡톡 튀는 기발함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너무 신난다!! 나는 공무원 수험생활만 3~4년 준비하고 20대 대부분은 도서관과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보냈는데, 어디서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나보겠는가? 와우 초-러키 가이!!!

그 속에서의 나

 처음엔 여기선 인싸로 지내보겠다는 다짐으로 Will(의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해보려고 했는데, 코피 한 번 흘리고 원래 쓰던 닉네임인 gucci(이하 구찌)로 지내기로 했다. Will이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도 없고, 다른 나로 행동하는 것 자체에 에너지 소모가 심했다.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려고 한다. 정말 다양한 분들과 말씀을 많이 나눠봤고, 너무 급발진해서 나의 다크 한 모습을 3분 만에 다 보여준 경우도 있고, 아주 시행착오가 많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꾸미고, 숨기고 할수록 진심이 전달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나답게 가려고 한다.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의 아시아 지구 총괄 헤드께서 최종 선발 인터뷰 전 인포세션에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에 남는다. 물론 영어를 못 알아 들었지만 그 문장 하나 남았다. "Be best your self". 최고의 내가 되라는 말씀이었다. 앞으로 1년간 최고의 내가 되기 위해 일단 "Be my self"부터 찾아가 보려고 한다. 29년의 시간 동안 나를 위한 시간은 별로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성유진 PM님이 말씀해 주신 "Me Time"도 가지기 위해서, 또 지금 소중하게 느끼는 감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일기나 생각정리, 회고 등을 꾸준히 써야겠다.

 또 한 가지는 안 해본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추석에 친한 개발자 형님과 식사를 했었는데, 들어간 회사에서 iOS 개발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이 너무 은은한 미소를 보이길래 이 형이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천재들을 이기기가 어려워서 낙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대로 보내주고, 나는 적당히 알고 있는 것 여러 개를 이어보려고. 한 가지를 엄청나게 잘하던가, 그게 안되면 적당한 것 여러 개를 잘하는 게 비슷한 영향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 그 과정에서 안 해본 것들을 많이 해볼 생각이야".

 가끔 만나면 카페에서 커피 하나 놓고 3시간씩 개발이야기를 하는 형이 갑자기 열정이 식었나 싶었는데 역시나 늘 새로운 것을 들고 오는 형이 고마웠다. 지금 그 형은 신톨로지(?)인가 개인 NAS를 설치해서 퍼블릭 IP 달고, 인프라 스트럭쳐를 구축하고 있다. 이유를 물어보니까 맥북 말고 아이패드 들고 다니면서 개발하려고 그런다고 해서 놀랐다. 모바일 개발자는 하나만 잘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나포함) 여러 분야를 잘 이어 주기 위해서 안 해본 것을 하는 태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의 각오

 최고의 잠재력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능력을 이끌어내고 그들을 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최선의 내가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가 있겠지만 거기서 배우고 다시 일어날 것을 알기에 두려움 보단 낙관적인 마음이다.

 기숙사 살면서 같이 지내는 러너들의 열정도 얼핏 보니까 오전에나 하하호호 그러지 밤,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우면서 공부하고 프로젝트한다. 심지어 온라인 부트캠프와 ADA를 같이 진행하는 사람도 있다. 우아한 모습 아래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니까 살짝 긴장도 되고 그렇다. 내 룸메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짝 죽을지도 모르지만 짜릿한 기분 좋은 긴장이다. 그 발버둥의 행렬에 동참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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